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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이날 봄날, 막히는 길을 뚫고 겨우 도착한 놀이공원 입구를 바라보며 '그냥 돌아가자' 말하는 나의 모습 내가 살던 동네에 작은 놀이공원이 있었다. 평일엔 거의 아무도 없어 장사가 되는가 싶다가도 주말이나 어린이날 같은 기념일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 곳으로 모인건 아닐까 하는 착각하게 되는 작은 동네 놀이공원. 엄마 아빠 집 옷장 구석에 보관된 앨범을 뒤져보면 나도 그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다는 증거로 삼을 만한 사진이 몇 장 있긴 하지만 내 기억엔 남아있지 않아. 다만, 남은 한가지는 택시를 타고 그 앞까지 가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야. 내가 입으로 꺼낸 말은 '사람이 너무 많아 기다리려면 힘들겠다 돌아가자' 같은 그런 말이었는데 실은 돈이 아까웠던것 같기도 하고 내가 놀이기구를 타는동안 그 밖에서..
플로팅 메모리 어렸던 때부터 지금까지 머리에 계속 떠도는 기억들이 있다. 대부분 특별하거나 인상적이라고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한 기억이라 왜 이렇게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떠도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기억들은 사라지고 오직 이 떠도는 기억들만 남고 나니 그 기억들이 전부라 내가 기억하는 당시의 소중한 흔적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머릿속에 맴돌던 기억도 조금씩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딘가 기록을 해두어야겠다 생각했다. 형식 없이 편하게 일단 적어보기로 한다.
아픈 소리를 안한다. 나는 아픈 소리를 안한다...라기보다 아파도 아픈줄을 모른다. 다 참다보면 참아졌다.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힘든 일들을 버텨내면서 컸고 자랐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괴로워서 참기가 힘들고 어렵고 잘 안된다. 그래도 도망치는 것,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실패하는 것일까. 다들 잘 해 내는데 나만 끝내는 것은 나의 잘못일까. 나는 너무 힘들고 괴롭고 아프다. 아프다고 하고싶은데 그동안 그런적이 없어서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포기해버리면 다 괜찮아 질까. 아니면 또 다른 아픔의 시작일까, 아니면 나의 해방, 새로운 도전이 될까. 너무 힘들다. 죽고싶은데 죽고싶지는 않다. 살기는 싫은데 살고 싶다. 나는 아픈 소리를 못 내겠다. 한번도 그런적이 없다. 방법을 모..
남았으면 하는 기억 이상했다. 내 기억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문하는 수족관인데, 수족관 문을 열자 느껴지는 그 물냄새와 습기가 익숙했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 냄새랑 연관된 어떤 기억이 있는것만 같았다. 언제 어디서 남은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수족관을 자주 갔다. 항상 감자도 함께 따라와줬다. 이제 나만큼 수족관에 가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진열된 어항속 열대어를 보며 얘는 우리집에 있는애고 얘는 색깔이 특이하며 얘는 엄청 큰데 얘는 데려가고 싶다! 하며 하나하나 꼼꼼히 둘러본다. 높은 곳도 안아달라며 놓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기억이 나에게도 감자에게도 오래오래 남았으면 한다. 따뜻함과 설렘이 있는 기억으로 말이야. 어제도 수족관에 갔다. 두군데나. 지호도 우리 어항에 물고기가 이미 ..
겨울은 천천히 가고 봄은 갑자기 온다. 오래도록 추웠다. 겨울이 시작된 지 벌써 몇 달이나 되어서 밖에서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던 것과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생활하던 것이 진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겨울 중 어느 쯤에선가 멈춘 것 같았다.원룸에서부터 학교까지 등교할 때 자전거를 이용했다. 자전거를 타면 5분 남짓 걸리는 걷기에 애매한 거리였다. 원룸촌의 좁은 골목과 보도블럭이 튀어나와서 울퉁불퉁한 인도를 지나고 나면 학교의 입구에 매화나무 두그루를 지나서 달렸다. 저번달도, 지난주도 어제도 겨울이었는데 오늘 풍기던 달달한 매화의 향기 때문에 갑자기 봄이 시작되었다.기온과 바람, 하늘과 구름은 겨울의 것 그대로였지만 더 이상 겨울이 아니었다.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봄을 나는 하나도 놓치기 싫었다. 겨울은 시작과 끝이..
'23년 마지막 날 저녁 불 꺼진 거실에 어항 조명만 하나 켜져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 둘러앉아 양손을 서로 맞잡고 이야기했다. '2023년에 좋았던 일 하나씩 이야기해보세요.' 훈다가 그랬다. 내가 먼저 휴직하며 좋았던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고 다음 감자 차례가 되었다. 나는 내심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았던 것? 놀이공원 갔던 것?...?'을 기대했는데 감자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엄마랑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았고~"였다. 그리고 나랑 같이 바닷가에서 모래놀이 하고, 조개 칼국수를 먹었던 것. 그다음엔 대학병원에서 눈을 진료받고 씩씩하다며 왕사탕 선물 받았던 것. 최근에 있었던 이벤트보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소소한 일상들이 지호에게도 행복하게 느껴졌나 보다. 평소에 짜증 내고 거리를 두고 나서는..
눈 내린 12월의 마당을 기억한다. 감자네 어린이집이 방학을 하는 달. 12월이 되면 항상 마당에 눈이 내린다. 이번에도 가족들이 둘러앉아 커피를 한잔하는데 바깥을 쳐다보던 감자가 눈이 내린다며 거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찬 공기 뒤로 눈발이 흩날렸다. 우리는 춥지만 제대로 껴입지도 않고 일단 나간다. 감자랑 우리가 함께 사는 동네엔 눈이 잘 내리지 않아서 마음이 동동거렸기 때문에. 좋았다. 구름 때문에 하늘은 뿌옜지만 마당 저쪽에 달아놓은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눈이 바닥에 닿는 소리를 덮어버렸다. 아버지도 닭 모이를 준다며 나오신 덕에 모두가 마당에 모였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나는 회사 생각을 한다.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는 듯 행복한 만큼 불안감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렇게 마당에 눈이 내렸다.
나의 산타 어릴 때부터 산타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와 산타가 주는 설렘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쯤은 별거 아니었다. 더 안쓰럽고 가여웠던 점은 산타가 있더라도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임을 진작에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가족끼리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함께 티비를 보며 시간을 함께 한다거나 케익을 먹는다거나 평소에 갖고 싶었던 장난감 선물을 받는다거나. 그런 기대는 해본 적도 없었고, 해도 되는 줄도 몰랐다. 오늘 회사에서 일하던중에 쿠팡에 들어가 산타복을 주문했다. 먼 훗날 흐릿하게나마 '크리스마스에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은 기억'이 감자에게는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퇴근하고 훈다와 저녁을 먹..
두렵지만, 천천히. 카메라를 만진다. 좋아서 한 일이다.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은 많이 했다. 나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느껴졌다. 더 잘해야 하는데 더 잘할 수 없을까 봐 겁이 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하지 못하는 상황보다 더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내가 느낄 그 감정들이 두려워서 겁이 났다. 지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감정이 들거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하는 것과 하기 싫은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나는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다. 잘 생각해보면 그동안, 하고 싶은것만 해왔다. 그렇기에 아무리 힘들고 눈물이 나고 답답하고 화가 나고 막막해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내가 선택한 ..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사진을 잘 찍는다는건 뭘까, 한참 궁금했다. 나는 사진을 자주, 많이 찍(었)지만 잘 찍지는 못한다. 같은 곳에서 찍은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뭐 어쨌든,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 잘 찍은 사진이라는 것은 한번 더 보고 싶은 사진을 찍어 내는 능력 아닐까. 그리고 그 속에 내 마음 조금 녹여낸다면 잘 찍은 사진 아닐까. 잘 찍고 싶다. 내 마음을 담아 보여주고 싶고 한번 더 보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다.
모순 결과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렇게 되려고 그랬지. 20년을 수능을 위한 공부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학문을 배울수 있는 학과로 진학을 해서 남들보다 2년을 더 공부하고 (단순히 취업을 위해서) 그렇게 얻은 지금의 직장. 그러니까 학창시절 전부를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서 공부했다고 해도 되겠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를 나가지 못해 안달이라니. 조금 모순이다. 무교인데도 신을 찾아 손을 모았던 면접을 지나 집으로 배달온 축하 꽃배달. 드디어 해냈구나. 싶었던 지난날들은 기억도 잘 안나고 죽어도 별 감흥 없을것 같던 날들만 가슴에 남았다. 많이 모순이다.
잘 해낼 수 있을 것임을. 어릴 때 아빠 옆 조수석에 앉아 나도 어른이 되어 운전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언젠가 나도 이 많은 차들 속 일부가 되어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서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어른이 되어 운전을 할 때까지 담담히 기다렸다. 길을 지나는 어떤 가족들을 보고 나도 먼 훗날 누군가를 만나 아이를 낳고 아빠가 될 날을, 그리고 그렇게 될 나를 생각했다. 나도 나를 못 챙기는데 다른 사람들 인생을 챙겨야 한다니. 너무나 먼 일 같아서 헛웃음이 났다. 맨날 울기만 하고 아직은 기지도 못하는 감자를 보면서 언젠가 얘가 걷고 뛰고 나랑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득했다. 내 앞에서 꼬물거리는 이 아기가 거짓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이제 어디든 내 차를 가지고 쌩쌩 잘 쏘다니고 오늘은 ..